에너지 손실, 사라지는 게 아닌 ‘열’로 분산되는 것
과학자들은 변화무쌍한듯 보이는 자연현상들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려 해왔다. 그 시도는 흔히 ‘변화가 일어나는 와중에 변화하지 않는 요소’를 찾아내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화학 반응 전후에 질량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든가 원자의 종류와 갯수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원자론’ 등이 이같은 맥락에서 정립된 관계들이다. 물리학에서는 17세기 후반에 ‘운동량 보존법칙’이 알려졌고, 19세기 중반에 성립된 ‘에너지’ 개념이 발전되면서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이어졌다. 생물학에서는 멘델의 유전법칙과 DNA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유전자’가 보존되고 후손에게 전달되는 메커니즘이 알려졌고, 이것이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진보를 가져왔다.
이중에서 에너지 보존은 광범위한 물리학적·화학적·생물학적 현상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에서 통합교과적 논술의 소재로서 매우 중요하다. 에너지의 종류는 역학적 에너지(운동에너지+위치에너지), 빛에너지(복사에너지), 화학에너지(엔탈피와 유사한 의미를 가지며 대략 고등학교 과정까지 사용되는 개념이다), 열에너지, 전기에너지 등 매우 다양한데, 이것들 사이에 상호 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모든 종류의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게 보존된다는 것이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이를 ‘열역학 제1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의도한 방향으로 전환된 에너지의 비율을 에너지 효율(energy efficiency)이라고 하는데, 자동차 엔진과 같은 열기관들의 에너지 효율은 거의 20% 이하이다. 일례로 전기모터가 회전하는 과정에서 감소한 전기에너지 가운데 60%가 역학적 에너지로 전환되었고 40%가 열과 진동(소리)에너지로 전환되었다면, 전기모터의 에너지 효율은 60%가 되는 것이다.
전기모터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에너지가 전환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부 에너지는 열과 진동(소리)와 같은 형태로 주변으로 흩어진다. 이처럼 주변으로 분산되는 에너지를 ‘에너지 손실’이라고 한다. 에너지가 손실된다는 것은 에너지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열이나 소리 등의 형태로 주변으로 분산되는 것(消散, dissipation)을 뜻한다. 즉 에너지의 ‘손실’과 ‘보존’은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에너지의 ‘손실’을 포함해야만 ‘보존’이 성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손실’되었느냐 여부는 에너지의 ‘형태’가 아니라 ‘분산도’(또는 ‘무질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열에너지로 전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손실’되었다고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분산’된 형태로 되었을 때 비로소 ‘손실’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가 분산된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엔트로피(entropy)이다. 흔히 ‘무질서도’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엔트로피의 엄밀한 개념은 대학 교과과정에서 다뤄지지만, 그 대략적인 개념은 논술고사에서 여러번 다뤄졌으며 심지어 수능 언어영역의 지문으로 출제되기도 했다.
엔트로피의 정의는 S=klog W로 나타낸다(단, 자연로그이며 k는 볼츠만 상수). 여기서 W는 주어진 거시적 상태에 대응될 수 있는 미시적 경우의 수이다. 예를 들어 다음 그림에서처럼 네 개의 공 A, B, C, D가 존재하는 거시적 상태에서 ‘배열1’의 미시적 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인데 비해 ‘배열2’의 경우의 수는 4, ‘배열3’의 경우의 수는 6이다. 우리는 네 개의 공이 자유롭게 운동한다고 전제하면 ‘배열3’과 같이 배열될 것을 예상하곤 하는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배열3’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배열3’이 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뜻이다. 즉 초기상태가 ‘배열1’이었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확률상 ‘배열3’처럼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의 엔트로피 의 정의에 대입해 보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고 일반적으로 법칙화할 수 있다(당연히 이 법칙이 필연적 법칙이라기보다 확률적 법칙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엔트로피의 법칙’ 또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한다.
단, 외부와의 에너지 출입이 있는 경우에는 엔트로피가 감소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생물체나 지구 등의 계에서는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에너지가 유입되고 다시 외부로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엔트로피가 작아지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다.
< 2007년 4월 11일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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