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스크랩] ‘아인슈타인 혁명’ 100주년

토양환경 2007. 1. 16. 19:25

 

빠르게 움직이면 시간은 느리게 중력 약하면 시간은 빨리 흐른다

과학계에선 1905년을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광양자 가설, 브라운 운동, 특수상대성 이론 등 물리학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이론을 마치 신(神)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불과 몇 달 사이에 세 편의 논문을 통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 때 그의 나이 26세였다. 1905년은 질(質)과 양(量)을 중심으로 하는 뉴턴적 3차원의 세계관에서 아인슈타인의 시공간이라는 4차원 세계의 발견으로 세계관이 한 차원 높아진 해이다. 꼭 100년 전의 일이다. 또 아인슈타인은 1955년 4월 18일 76세로 사망했으니 올해는 그의 50주기이기도 하다.

이를 기리기 위해 유엔은 2005년을 ‘세계 물리의 해’로 정했다. ‘물리의 해’ 는 결코 물리학자만의 행사가 아니다. 첨단문명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아인슈타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에 일반인도 아인슈타인을 알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과연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을까?

특수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내가 만일 빛과 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의문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시간, 거리, 질량, 에너지에 대한 이론인 특수상대성 이론은 빛과 연관이 있다.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광속도 불변의 원리)하며 어떤 물질도 빛의 속도보다 빨리 달릴 수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빛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빛의 속도는 일정할 뿐

수백 년간 과학자들은 우주공간 속에 정지해 있는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다른 행성이 돌고 있고, 태양과 별과 행성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에테르’라는 물질로 꽉 채워져 있다고 믿었다. 20세기 초까지 물리학자들은 빛은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파동은 매개(媒介)물질이 있어야 한다. 수면파(물결)에는 물이, 음파에는 공기가 매개물질이듯이 빛이 파동이라면 빛을 전달해주는 매개 물질(매질)이 필요할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이것을 에테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파동인 빛을 전달할 매질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에테르는 다방면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검출된 적이 없다. 아인슈타인이 태어나기 전인 1873년,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은 빛이 전기와 자기의 힘으로 물결처럼 파동을 일으키며 나아가는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 1887년 미국의 두 과학자 앨버트 마이컬슨과 에드워드 몰리는 실험을 통해 ‘에테르는 존재하지 않고 대신 빛의 속도가 언제나 일정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주공간에 불변인 절대좌표(절대시간이나 절대공간)가 없다’ 는 것을 뜻한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에 주목했다.

그 옛날 사람들은 빛이 전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주 순식간일 정도로 짧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을 제일 처음으로 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힘이 가해진 물체는 가속운동을 한다. 이 때 점점 속도가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정도를 ‘가속도’라고 한다. 물체가 공중에서 떨어지면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이것을 흔히 ‘중력가속도’라고 한다. 갈릴레이는 중력가속도를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몰랐다.

영국의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질량을 가진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중력)의 법칙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지구 중심에서 물체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에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뉴턴이 발견한 물체의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 법칙은, 실제로 움직이는 물체와 태양 둘레를 도는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너무나 잘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 뒤 200여년 동안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위대한 법칙으로 추앙받았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물리학이 어디가 잘못되었기에 감히 도전을 한 것일까? 뉴턴은 ‘속도가 무한히 빨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속도에 한계가 없으니 빛보다 빠른 물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빛의 속도가 항상 일정하다’는 아인슈타인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이 모순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 문제가 어느 날 돌연히 해결되었다.

속도는 ‘거리÷시간’의 식으로 표시된다. 그런데 항상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빛을 이 식에 꼭 들어맞게 하려면 시간이나 거리(공간)가 상대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절대시간’이나 ‘절대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상식을 깨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특수상대성 이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을 때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꺼림칙한 문제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말 그대로 특수한 경우, 즉 빛처럼 등속운동을 할 때만 성립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가속운동이나 회전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맞지 않았다. 물리법칙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했던 아인슈타인에게 이것은 커다란 난관이었다.

자신의 이론이 반쪽짜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10년을 끙끙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생애에서 가장 멋진 생각을 떠올렸다. ‘어떤 한 사람이 자유낙하를 할 때, 떨어지는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드는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갈릴레이는 물체가 지구로 떨어질 때 질량과는 무관한 일정한 가속도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따르면 크건 작건 간에 떨어지는 물체는 무게가 없다. 다시 말해 떨어지는 물체의 무게는 중력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의 생각대로 떨어지면서도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무중력 상태를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선이 발명돼 무중력 상태를 인류가 경험하기 전에 이론적으로 무중력 상태의 존재를 생각해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결국 ‘가속도와 중력이 같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것이 일반상대성 이론의 한 기둥인 ‘등가 원리’다. 특수상대성 이론이 광속도 불변의 법칙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라면 일반상대성 이론은 ‘중력과 가속도가 같다’는 등가 원리에서 출발된 이론이다.

등가 원리의 중요한 결과는, 중력이 본질상 모든 물체를 서로 끌어당기는 힘(만유인력)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계를 예로 들면 뉴턴 역학에서는 태양과 지구가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에 의해 지구가 태양 주위를 타원운동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일반상대성 이론에서는 태양의 중력에 의해 주위의 공간이 휘어져 있어서 지구는 휘어진 공간 내에서 직선운동을 한다고 설명한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세 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그 중에 하나가 빛이 중력장에서 휜다는 것이다. 중력에 의해 휘어진 공간을 통과하는 것은 질량을 가진 물체든 질량이 없는 빛이든 모두 휘어진다. 만일 태양의 곁을 지나는 별빛이 있다면 그 빛은 태양의 중력에 의해 휘어진 공간을 따라 움직이므로 직진하지 않고 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빛이 휜다는 것은 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의미다. 중력이란 ‘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말과 같다. 물론 공간만 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휜다. 시간이 휜다는 것은 특수상대성 이론에서처럼 시간이 변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중력이 강한 곳에 있는 시계는 느려진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내용을 담아 1916년 3월 ‘일반상대성 이론의 기초’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상대성 이론의 완성이었다. 당시 전세계 과학자 중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을 만큼 상대성 이론은 난해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19년 11월, 운명의 여신은 다시 아인슈타인에게 미소를 지었다.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이 아인슈타인의 ‘예언’을 확인하려고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아프리카로 찾아갔다. 평소 낮엔 별을 볼 수 없지만 개기일식 때는 달이 해를 가리는 덕분에 태양 주변에 나타나는 별을 볼 수 있다. 에딩턴이 시도한 방법은 이 별들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약 6개월 뒤 그 별들이 다시 밤하늘에 나타날 때 찍은 사진과 비교하는 것이었다.

만일 일반상대성 이론이 맞다면 태양에 가깝게 보이던 별들의 위치가 달라져야 하고, 태양으로부터 멀리 보였던 별일수록 위치이동이 더 작아져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험결과는 태양의 중력에 끌려 별이 원래의 위치를 벗어난 것을 보여줬다. 별빛은 휘었고, 일반상대성 이론이 옳았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 후 아인슈타인은 수많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면서 시간과 공간을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았고, 또 상대론에서 파생되는 E=mc²을 통해 에너지와 질량을 통합하여 원자핵에 갇혀 있는 에너지를 우리에게 전력이라는 형식으로 공급했다. 이 엄청난 이론들을 한 사람의 힘으로 이뤄낸 것도 모자라 1917년에는 ‘방사의 양자역학 이론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레이저의 원리를 유도했다. 레이저는 오늘날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대형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계산할 때 바코드를 읽어들이는 장치, 광통신과 홀로그래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CD와 영화가 저장된 DVD 등도 모두 레이저를 이용해 정보를 읽는다.

그 밖에도 트렌지스터, 전자현미경, 컴퓨터와 광전지 등은 ‘아인슈타인 혁명’으로부터 출발한 인류의 발명과 정보·통신 분야의 결실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의 빛 연구가 오늘날 인류에 얼마나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는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수상대성 이론을 만들기 위해 적용했던 빛 연구가 이렇듯 엄청난 일들을 해낸 것이다.

 

 

 

< 주간조선 -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

출처 : Think Factory of GooRaSoo
글쓴이 : 크레이지곽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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