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산화탄소 이온화, 평형 이루는 과정
이산화탄소 이온화, 평형 이루는 과정
시소 양쪽에 앉은 두 사람이 완벽하게 평형을 이루고 있으면 우리는 이를 ‘정적 평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반면 설탕을 계속 물에 부어 설탕이 더 이상 추가로 녹지 않는 상황은 ‘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더 이상 설탕이 녹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미시적으로는 설탕이 계속 녹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결정 상태에서 용해된 상태로 변화하는 설탕의 양이, 용해된 상태에서 결정 상태로 변화하는 설탕의 양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거시적으로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처럼 한 방향의 변화량과 반대 방향의 변화량이 정확히 일치하여 거시적으로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동적 평형’이라고 한다.
동적 평형의 사례들
동적 평형은 화학에서 많이 다루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가 물에 용해된 뒤 탄산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다시 1, 2차 이온화되는 과정을 화학반응식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화살표가 양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각 단계에서 정반응도 일어나지만 역반응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물속에 들어간 CO₂는 무려 네 가지 형태(CO₂, H₂CO₃, HCO₃-, CO₃²-)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며, 네 가지 형태가 존재하는 비율은 각 단계 반응들의 정반응/역반응 경향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 특정한 상황에서 정반응/역반응 경향의 상대적 크기를 알려주는 지수를 ‘평형상수’라고 하는데, 우리는 평형상수를 통해 평형 상태에서 반응물질 또는 생성물질의 농도를 계산해낼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화학Ⅱ에서 다룸).
이 같은 동적 평형은 화학반응 외에서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깡통에 물을 채워놓고 주변에 전등을 켜놓으면 깡통의 온도가 높아지다가 결국 일정해지는데, 이것은 깡통이 흡수하는 복사에너지의 양과 방출하는 복사에너지의 양이 일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대습도 100%의 포화상태에서 물이 더이상 증발하지 않는 것도 미시적으로 증발량과 응결량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생태계 에너지 피라미드가 균형 상태에 있는 것도 각 단계로 유입되는 에너지량과 유출되는 에너지량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화학이나 지구과학 교과과정에서 다뤄지는 물질의 순환(대표적으로 물, 탄소, 질소의 순환)을 보면 유입량과 유출량이 일치하기 때문에 각 단계에 존재하는 물질의 양은 변동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식물에 가해지는 빛의 세기를 조절해주면 ‘보상점’에 있는 경우는 광합성량과 호흡량이 일치하여 겉보기에 식물의 몸무게에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스톡/플로우, 넷/그로스
보유량을 흔히 스톡(stock)이라고 표현하는 반면 유입량/유출량은 플로우(flow)라고 말하여 구분한다. 생태계 에너지 피라미드에 쓰여있는 숫자는 각 단계에 ‘저장되어 있는’ 에너지량이라고 여기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즉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를 ‘스톡’량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피라미드에 표기된 숫자는 단위시간당 이전 영양단계로부터 해당 영양단계로 유입된 에너지량, 즉 일종의 ‘플로우’량이다.
플로우량은 다시 그로스(gross)량과 넷(net)량으로 구분된다. 그로스량은 단위시간당 유입량(또는 생산량)을 나타내는 반면, 넷량은 유입량에서 유출량을 뺀 양(또는 생산량에서 소비량을 뺀 양)이다. 넷량이 (+)라면 스톡이 증가하고, 넷량이 (-)라면 스톡이 감소한다. 예를 들어 소득이 지출보다 많아 넷량이 (+)를 나타내면 보유자산이 증가했다는 뜻이고, 반대로 소득이 지출보다 적어 넷량이 (-)를 나타내면 보유자산이 감소했다는 뜻이다.
유사한 사례를 과학에서도 많이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생태계 에너지 피라미드에 표시되는 숫자는 그로스량이라고 할 수 있으며, 총광합성량 또한 일종의 그로스량이다. 그런데 ‘총광합성량’(유기물 생산량)에서 호흡량(유기물 소비량)을 빼면 ‘순광합성량’이 나온다. 흔히 총광합성량을 ‘gross productivity’, 순광합성량을 ‘net productivity’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두가지 양이 각기 전형적인 그로스량과 넷량임을 알 수 있다.
식물에게 보상점 이하의 빛을 쬐어주면 총광합성량(그로스량)보다 호흡량이 많으므로 순광합성량(넷량)이 (-)가 되는데, 이는 식물이 보유하고 있는 유기물량(스톡)이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식물은 생존에 필수적인 유기물을 잃어버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과학 과목에서 다뤄지는 여러가지 수량들이 스톡량인지 플로우량인지, 플로우량이라면 그로스량인지 넷량인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이러한 개념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응용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 2007년 4월 25일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