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엔트로피와 뫼비우스변환

토양환경 2006. 5. 13. 12:46
엔트로피와 뫼비우스변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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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청소부로서 박테리아는  죽은 동식물을 분해하여 먹이 재생 사이클을 완성시키는 생태계의 중요한 한 축이다.

 

지표 물질의 순환

마찬가지로 돌과 모래도 거대한 순환 구조를 가진다.

거대한 습곡이나 단층은 풍화 침식작용 ( 제 1의 힘) 을 통해 산과 계곡이 되고, 산은 다시 깎여 바위나 자갈로, 자갈은 모래로, 모래는 진흙으로 변해간다. (이 때 바위 자갈, 모래, 진흙 단계에서의 각 상태를 변화시키는 주요한 힘의 종류가 달라진다.) 알갱이가 작아질수록 알갱이들간의 마찰이나 충격력, 탄성력 및 팽창수축 응력은 작아지는 반면, 알갱이들 간의 간격도 줄어들게 되어 마침내 인접한 입자들간에 전기적 인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수준까지 진행된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바위를 깨뜨리고 깎아 진흙을 만들었던 마찰이나 충격력, 탄성력 및 팽창수축 응력은 거의 무시되고 입자 상호간의 전기적 인력에 의한 결합력 즉 제 1의 힘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제 2의 힘이 증가하게 되어, 입자들은 깨어지거나 부서지는 대신 다시 결합하거나 응고하여 거대한 바위가 되게 한다. 거대한 바위가 되면 분자나 입자들 간에 작용하던  미세한 전기적 힘이 탄성적으로 연결되어 합쳐질 수 있게 되어 탄성력과 팽창수축 응력이 커지게 되어 습곡이나 단층을 일으킬 수 있는 거대한 제 3의 지층 규모의 힘이 나타나게 되고, 이 힘은 지표나 지층을 움직여 습곡이나 단층을 만들게 된다. 굴곡 되고 단절된 지표는 다시 비바람과 온도변화에 따른 수축팽창력에 의해 풍화 침식되고 부서져 다시 진흙이 되는  순환을 계속하게 된다.

 

지표 물질의 순환에서 보면 2개 이상의 작용력이 교대로 커졌다가 작아지면서 새로운 작용력이 활성화 되며 변해간다.

마찰 충격력, 탄성력 및 팽창수축 응력의 합을 x축, 입자들간에 작용하는 전기력의 합을  y축,  습곡이나 단층 작용력을  z축으로 하여 힘이 작용하는 패턴을 그려보면, 날씨 패턴의 로렌츠 끌개와 유사한 나비 모양의 프랙탈 패턴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연의 비선형성과 회기성 그리고 다차원성에서 나오는 일반 현상으로, 자연의 뫼비우스 순환을 하면서 변해 가는 것을 보여준다. 습곡, 산, 바위 돌, 진흙과 같은 자연의 모습은  이러한 뫼비우스 순환에서의 특정 위상 또는 상태가 되고, 각각의 위상이나 상태에는 거기에 주로 작용하는 에너지나 힘이 있다.

 

바위를 구성하는 분자나 입자들간에 작용하는 전기적 힘( 입자나 분자 규모에서 원소들이 모이거나 결정이 되게 하는 힘)은 탄성의 요인되어 거대한 힘의 전달을 가능케하여 그힘이 합쳐져 거대한 힘이 되어 바위가 수축 팽창하게 하나  ,작게 부서진 돌맹이나 모래에 있어서는  전기적 힘이 서로 탄성적으로 합쳐져도 그 크기 때문에 거대한 힘이 되지 못하므로  돌맹이나 모래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은  비바람에 의한 침식이나 서로 부딪쳐 발생하는 마찰이나 충격력이 된다.

 

진흙단계에서 작용하는 힘은 모래에 작용하는 힘보다 훨씬 작으면서 입자들간에 결합하는 전기적 힘이 된다.  즉 다른 크기의 힘은  진흙의 상태나 위상을 변화시키는데 사용되지 않으며 그러한 큰 힘은 진흙 입자에 있어서는 투명한 유리를 통과하는 빛처럼 바이패스하게 된다.

 

여기에서 자연의 특정 상태나 위상에는 거기에 작용하는 힘과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진흙에 작용하는 힘과 모래에 작용하는 힘 그리고 지층에 작용하는 힘의 규모와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머지 힘과 에너지는 바이패스한다. 돌이나 자연의 순환에서  힘과 에너지는  돌맹이나 모래 진흙에서처럼  각기 쪼개진 형태로 작용할 수 있고, 바위나 지층을 구성하는 분자나 입자들간에 작용하는 힘이 탄성적으로 합쳐져 거대한 구조의 힘이 될 수도 있다.

바위나 지층과 같은 고체에 작용하는 전기력 뿐 아니라 공기나 수증기도 힘의 탄성적 연결을 통해 파동이나 폭풍과 같은 거대한 힘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거대해진 힘은 고공에서 수증기 응축을 통한 전하의 응집과 방전을 통해 열로 바뀔 수 있고, 거대한 습곡이나 단층작용의 거대한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

작게 부서진 힘은 매질의 탄성 연결을 통해 얼마든지 거대한 힘이 될 수 있으며, 작은 구조난 에너지는 매질 요소의 근접성을 통해 상호 연결을 통해 얼마든지 거대한 구조로 변할 수 있다.

 

미세하게 부서진 진흙 알갱이에 작용하는 전기적 힘은 합쳐져 거대한 바위의 응력으로 변하고, 뭉쳐진 바위의 응력은 거대한 단층작용이나 습곡작용의 힘이 된다.거대한 힘은 이처럼 작은 힘의 연결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지형을 변화시킬 정도로 거대한 힘이 분자규모에 작용하는 미세한 힘의 연결에서 비롯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공기나 수증기의 유동케 하는 미세한 힘은 합쳐져서 거대한 폭풍이나 비가 되고 폭풍과 비바람은 광범위한 침식작용과 풍화작용을 일으킨다. 이때에도 공기나 수증기에 응축된 같은 작은 힘은 기체 분자의 요동으로  그리고 이러한 요동은 상호 연결되어 거대한 요동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처럼 거대한 크기에서부터 미세한 크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힘은  날씨에서처럼 카오스 끌개를 이루게 되고, STAT에서처럼 프랙탈 특성에서처럼 다양한 규모와 세기의 힘 즉 에너지나 응력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세기의 힘이나 에너지는 다양한 크기나 모양의 구조 즉 상을 만들고 이는 곧 자연의 모습이 된다. 작은 크기의 전기력이나 공기진동은  서로 합쳐지거나 그룹지워 다양한 크기와 주파수의 진동을 일으키고 이러한 다양한 진동은 그것을 포함하는 계의 구조와 맞는 에너지 구조로 재편된다. 물표면에 가한 충격이 초기의 난수 같은 파동에서 공명파동으로 바뀌듯이.

 

에너지 보존법칙과 엔트로피 보존법칙

 

열역학 제 1법칙인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에너지의 모습이나 구조가 바뀌더라도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고, 제 2 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은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 법칙이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 맞다면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제 2 법칙은 엔트로피도 보존되어야 한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는 엄청난 혁명적인 발상으로 잘못하면 현대의 과학세계에서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에너지는 저절로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따라서 다양한 크기나 모습으로 분산되고 수용된다는 에너지 보존 법칙은 에너지의 이동이나 변형이 있을 뿐

 

응력과 에너지

 

에너지는 응력상태로 축적된다. 에너지 준위는 응력의 양자상태가 된다.

다양한 응력상태는 다양한 소리를 낸다. 자신의 응력에 해당하는 에너지나 압력 스펙트럼을 방출한다.  응력 평형 상태에서 계는 해당하는 차변응력(에너지)을 흡수한다.

에너지 구조는 물 분자의 이온 결합 응력, 다이폴 편이, 수소결합 및 진동과  압력파에 집단으로 대응하는 파동과 진동 흐름이나 요동 등이 있다.

 

평면 공간에 자연 구조물들이 있듯이 (예를 들어 물 클러스터, 눈이나 산 돌맹이, 결정 등) 어떠한 물질 시스템에는 에너지 구조물이 있다. ( 물 클러스터, 눈송이, 물) 즉 물은 이온결합, 수소결합, 진동, 파동, 다이폴 편이와 같은 에너지 또는 응력이 어우러진 에너지 집합체이기도 하다. 플랑크 흑체 복사 에너지 분포는 이러한 에너지 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소적으로 미세한 분자에 포획된 에너지는 파동으로서의 스펙트럼을 분자 자체를 슬릿으로 하는 것처럼 방출하고 흡수한다. 입자와 파동 이중성의 한 단면이다.

동일 에너지 분포 포락선에 에너지가 공간을 거슬러 자유 이동하는 것이다. 에너지가 동일한 지구의 특정 궤도에 달이 임의의 위치로 옮겨다는 것처럼.

에너지가 옮겨 다니는 분포는 슬릿을 빠져 나온 파동의 회절과 같은 방식이다.

입자를 4차원상의 구멍으로부터 빠져 나와 3차원 공간으로 회절하는 방식이다.

 

이 때 에너지의 흡수 방출하는 입자의 입장에서 상호 관계는 동시적이어야 한다.

해당구조를 완성하는 방향 에너지의 주고 받음을 통해 좀더 안정한 양자상태로 전이하는 것이다. 한 차원에성의 안정화는 다른 차원에서의 불안정을 심화시켜  다시 이전 상태로 회기하는 경우도 많다. 뫼비우스 순환이나 STAT인 것이다. 단안정일 수도 잇고, STAT처럼 양안정 상태일 수도 잇다. 이 때는 에너지가 진동한다 증 상태진동이나 위상진동 도는 상전이 진동이 일어난다.

 

엔트로피 증가나 산일구조의 형성 나아가 카오스 생성과 결정이나 생명의 생성은 이러한 에너지의 다차원적  양자화와 구조화 뫼비우스 변환 때문이다.

 

즉 특정 차원이나 규모에서의 엔트로피 증가는 다른 차원이나 규모에서의 불안정화( 박테리아의 분해작용처럼, 작은 규모에서의 산화작용이나 풍화작용에 의해 건물이나 산이 마모되는 것)를 위한 작용으로 에너지의 재분배 또는 구조화 양자화를 의미한다.

눈송이나 결정은 특정 상황에서 부식되기도 하지만 성장하기도 한다.

결정의 성장이나 부식 과정의 단순한 선택뿐 아니라 결정 구조나 에너지 구조도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토션야금)

토션 야금은 카오스적일수 밖에 없다. 원상복귀하려는 두개 이상의 자연 발생적 순환이 경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날씨처럼.

 

과학사(科學史)를 살피면,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란 신화는 무너지고 만다. 어느 시대가 낳은 과학이론은 과학자의 인생관, 자연관은 물론 당대의 시대 사조나 사회...경제...문화적 제반 요소들이 상당히 긴밀하게 상호작용한 총체적 산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느 시대적 분위기가 무르익어 어떤 과학이론을 출현시키는가 하면, 그 배출된 이론이 다시 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되먹임 되어 직접 또는 간접의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부터 사회적 다윈주의가 출현한 것은 그 가장 극적인 예이고, '엔트로피 법칙'이 현존 과학기술 문명에 깔린 발전 개념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는 틀이 되는 것도 그 같은 맥락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세계관, 엔트로피 (엔트로피: 21세기의 새로운 세계관(Entropy: A New World
view))은 현재 미국 생물과학기술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저술인데, 리프킨은 92년에 죠지 워싱턴 대학의 시험관 수정프로그램의 배자복제시험 성공 소식이 매스컴에 발표됐을 때에도 즉각적으로 윤리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던 문명 비평가이다. 그의 저서로는 [엔트로피] 이외에 유전공학기술의 사회적 충격을 비판한
<Who Should Play God?>, <The Emerging Order>, <The North Will Rise
Again>, <Commonsense II> 등이 있다. 

 

펜실바니아 대학의 와튼 스쿨(Wharton School of Finance)과 터프츠(Tufts) 대학의 플레처 스쿨(Fletcher School of Law and Diplomacy)을 거친 리프킨의 경력으로는 의회 위원회에서의 경제 및 사회문제에 관한 노사관계 고문, 80년 카터 행정부에서의 80년대 경제발전 계획의 입안 등이 눈에 띤다.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서양 세계관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개관하면서 현대 산업사회의 만성적 위기를 해결하고 주어진 한계 내에서 살아가는 지탱가능한 발전의 새로운 세계관으로써 엔트로피 법칙의 진리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한다. 

 

[엔트로피]는 '세계관', '엔트로피 법칙', '엔트로피 - 새로운 역사의 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와 다가오는 엔트로피 분수령', '엔트로피와 산업시대', '엔트로피 - 새로운 세계관'으로 짜여 있다. 그의 논의는 역사상의 기술혁신에 의해 인류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선진 산업사회의 모순은 무엇인가 등에 초점을 맞추어 경제...에너지...제도...가치관...과학...교육...종교...군사 등의 세분된 분야에서 구체적 데이타를 실감 있게 제시한다. 그로써 그의 생태주의적 분석은 물질지상주의에 혼을 팔아버린 우리 모두에게 섬찟한 충격마저 던진다. 

 

그가 엔트로피 법칙을 문명비판의 시각에 도입하고 있는 배경에 관해 그의 말을 한 구절 인용해 보자. "세상은 갈수록 혼돈의 와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떤 일도 제대로 되어가는 게 없어서 여기저기서 끝없는 수선과 짜깁기의 연속이다.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 모두를 몰아 붙여 탓해 보아도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한다 --- 정치권의 리더나 누구 대단한 사상가라 할 지라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 붕괴로 몰고 가는 냉혹한 기운이 세계를 잠식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세계관에 대해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세상을 병들게 하고 그 속의 모든 것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우리들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상황 또한 1960년대 이후의 급진적 발전에서 앞뒤 가릴 것 없이 선진국의 발전 모델을 졸속으로 수용하다 보니 미처 대처하지 못한 허다한 부작용에 맞닥뜨리고 있어, 엔트로피 이론에 근거한 이 '세상'과 '발전'이란 개념에 대한 발상의 대전환이 깊은 호소력을 지니며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엔트로피 법칙이란 무엇이며, 자원의 고갈과 오염의 심화라는 환경문제를 비롯한 현대문명의 중증을 향한 비판적 시각에는 어떻게 적용되는 것일까? 자연세계의 변화 방향성을 규정한 엔트로피 법칙 불의 발명 이래 인류의 불에 대한 관심은 지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야 열에 대한 연구는 그 기틀이 잡혀, 그 결과 에너지가 물리학의 기초개념으로 자리한다. 

 

그러한 배경에서, 1865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 1822-88)는 '열의 역학적 이론에 관한 두 가지 기본법칙'으로서, "(1)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 (2)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라는 법칙을 내어놓게 된다. 이 선언은 열역학의 제1, 제2 법칙의 탄생이자 물리학 성립의 공포를 의미했다.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세계의 변화의 방향성을 규정한 것이었다. 사실상 엔트로피 법칙이 말하고 있는 줄거리는 이미 태고적부터 누구나 알고 있던 평범한 진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걸어 나와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고,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저절로 거꾸로 솟아 올라가는 일은 없다. 그리고 한 번 타버린 술의 잿가루로부터 저절로 다시 새 술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다는 정도의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단지 법칙으로 서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클라우지우스에 의해 창안된 엔트로피(Entropy, S)는 단적으로 어느 계의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적 개념이라고 정의된다. 그는 '열의 역학적 이론에 관하여(On The Mechanical Theory of Heat)'란 논문에서 모든 언어에 두루 쓰이도록 그리스어의 '변형(tropy)'이라는 단어를 빌어 'energy'라는 용어에 유비적으로 'entropy'라 명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진리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법칙의 지위로 정의된 엔트로피는 그 의미가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이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엔트로피 개념의 정의는 클라우지우스에게도 15년이 걸린 난해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877년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에 의해 S = klog W (W는 분자들의 배열 방법 수)라는 수학적인 관계식이 유도되면서야 비로소 엔트로피의 물리적 의미가 설정되었고, 엔트로피는 과학사상(科學史上) 전문 과학자들에게서도 가장 많은 오해를 유발시켰던 기록을 남겼다. 

 

자연세계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인공적 변화 엔트로피 법칙은 그 출현과 함께 우주론과 연결되었다. 우주의 물체가 식어가서 끝내는 생물이 살 수 없는 냉각의 종말에 이를 것이라는 비관적 우주론은 18세기로 거슬러 오르나, 19세기 중반에 다시 엔트로피 개념의 명료화에 기여했던 과학자들, 예컨대 톰슨(William Thomson), 헬름홀쯔(Hermann von Helmholtz), 클라우지우스 등 당대의 석학들은 우주 종말의 비관론에 휩싸여 우울해 했다. 클라우지우스는 엔트로피 법칙의 우주론적 결과로서 열죽음(heat death)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즉 우주는 결국 최대 엔트로피 상태에 이르러 사용가능한 에너지가 완전히 사용불가능한 형태로 바뀌게 될 것이고, 따라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원한 정지상태에서 이 세상은 시간이란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종말에 이를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1877년 볼츠만에 의해 증명됐듯이, 엔트로피 법칙은 확률적 법칙이다. '맥스웰의 도깨비'를 등장시킨 사고실험(思考實驗)에서 추론됐던 것처럼, 이 법칙에 위배되는 과정이 일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이란 '한 떼의 원숭이들이 타자기 위로 멋대로 돌아다닐 때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모든 책을 찍어낼 수 있는' 가능성보다 못한 것이다. 



슈뢰딩거가 생명현상에 도입한 네겐트로피 즉 옴의 엔트로피 개념은 부분계에 국한되는 것일 뿐, 어떤 이론이나 기술에 의해서도 계 전체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엔트로피 법칙은 우주의 어느 곳에 질서가 더 생기는 것은 다른 곳에 그보다 더 큰 무질서가 생긴다는 것을 절대진리로 천명한다. 기계론적 세계관(mechanical philosophy)에서 이른바 발전에 의해 '더 질서 있는' 물질적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한 편에 그보다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자연세계에서의 인공적 변화란 사용가능한 에너지를 불가능한 형태로 바꾸면서 주위의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 즉 값어치가 있는 상태에서 값어치가 없는 상태로의 한 방향으로 밖에는 일어날 수가 없다는 한계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 지구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경제성장이란 결국 사용가능한 자원을 사용불가능한 쓰레기로 바꾸면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저절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가속적으로 높임으로써 끝장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형상이 되고 만다. 

 

(低) 엔트로피 사회가 자원의 낭비와 오염을 줄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우리에게 어느 문명의 에너지 사용은 그것으로부터 발생되는 엔트로피를 배출시킬 수 있는 적절한 장치가 작동되고 있는 한에서 지속되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20조 달러를 웃도는 화석연료 의존의 세계 경제가 가차 없이 쏟아내는 오염물질은 실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갖가지 국제환경협약의 발동은 구체적으로 산업활동에 족쇄를 채우기 시작했다. 

 

산업후 사회로의 문명의 또 하나의 분수령에 서서 이제 인류 사회가 문명의 존속을 원한다면 새로운 에너지 환경에 적응키 위한 새로운 에너지 기술과 사회적 인프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될 상황인 것이다. 문명이 야기시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에는 자연적인 메카니즘을 이용하는 것이 최상의 지속적 방법으로 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변화는 자연의 일부로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귀결점에 이르게 되고, 이런 맥락에서 엔트로피 법칙은 동양의 전통적인 과학사상(科學思想)과 만나게 된다. 

 

엔트로피 개념이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세계관은 과도한 물질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우리 주변의 세상사가 무언가 크게 잘못돼 가고 있다는 느낌은 구태여 어느 특정인의 것이 아닌 상황인지라, '어찌 됐든 물질적 진보를 추구한다'든가 '클수록 좋다'는 식의 高엔트로피 개념이 헛되고 덧 없는 것임을 탄식하는 소리는 신음처럼 퍼져가고 있다. 에너지 전환의 분수령에 서서 低엔트로피 사회야말로 자원의 낭비와 오염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는 인식은 상당히 퍼져가고 있으며, 이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할 절실한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발상의 전환을 데이타에 바탕하여 강한 호소력으로 설득하는 일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