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우포늪

토양환경 2007. 3. 10. 21:34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포를 소벌이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지세와 관계가 있다. 장재리는 법정리상으로 이방면 사무소가 위치한 안리에 속해 있으며, 장재리는 행정리명이고 이는 다시 소목과 장재리로 나뉘어진다.

소목의 뒤편에 위치한 산이 우항산(牛項山)인데 이 부근의 지세가 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우항산은 소의 목 부위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비롯된 명칭이라고 한다.
또한 소목은 이러한 연유로 해서 여름철에 항시 "분답해야(시끄러워야)"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이 전해 내려 오고 있는데 그 뜻은 소목의 지세가 소의 형상과 관계있음을 비유하여, 여름철에 소의 활동이 활발해야 (일하는 소가 열심히 일하느라고 울음소리가 많이 나야) 농사도 잘되고 사는 것이 나아진다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다.

소목에는 창녕 성씨의 재실과 산소가 있으며, 마을의 대부분이 창녕 성씨의 종중토지이다. 묘소가 있는 곳은 우항산이 소의 목이라고 한다면 허리잔등(복부)에 해당하는 지점이며 옛부터 묘를 잘 쓴 곳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창녕 성씨는 단일본으로 현재 이방면에는 많이 살고 있지 않으나 이웃한 대지면 모산 등 7개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이곳의 재실에서 모시고 있는 분은 시조의 외아들 고려문화시중 성송국이다.

소목에서 그다지 높지않은 고개를 넘어가면 장재리에 이르게 되는데, 장재리에 부락이 형성된 것은 약 70여 년 전이라 하며 소목은 그보다 약간 더 앞서서 형성되었다.
장재리 부락이 면해 있는 늪지를 나무벌(목포) 이라 부르는데 우포늪지의 서쪽 수면을 차지하는 곳이며 지도상에는 이 명칭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나무벌을 사이로 해서 장재리의 대안에 위치한 노동, 토평부락 일대에는 옛부터 소나무들이 많았으며,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배를 타고 건너가서 땔감으로 쓸 나무를 가져오는 지역이었다.나무 땔감을 많이 모을 수 있는 곳이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소벌과 나무벌은 제방을 경계로 우포의 남서쪽 지점에서 연결되는데, 여기에 제방이 있고 수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왕래가 가능하다.
제방은 낙동강의 범람으로 인한 침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70년대에 축조된 것인데, 강물이 소벌에서 넘쳐들어오면 수문을 닫아 침수로 인한 피해가 다소 줄어 들었으며 따라서 장재리의 침수피해는 소목에 비해 덜한 편이다.

네 개의 늪 모두가 모래나 뻘이 있었지만 사지포늪은 가장 모래가 많이 있어서 모래벌이라 불렀다고 한다.
쪽지벌은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옛날 그대로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네 개의 늪 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기 때문에 쪽지벌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 출처 : 우포늪ㆍ주남저수지 생태계조사(1997, 환경청)


늪면적은 우포늪이 1,278,285㎡이고 목포늪이 530,284㎡ 이며 주변에 사지포와 쪽지벌이 위치하고 있고 이방면, 유어면, 대합면 3개면, 14개 마을이 인접하고 있다.

 

 

 

 

 

 

우포늪
    :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 일원 (1,278,285㎡)
목포늪
    :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안리 일원 (530,284㎡)
사지포
    :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 일원 (364,731㎡)
쪽지벌
    : 경상남도 창녕군 이방면 옥천리 일원 (139,626㎡)
좌표
    : 35°33′N, 128°25′E
 

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늪이다.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있는 70만평.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에는 수많은 물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부들, 창포, 갈대, 줄, 올방개, 붕어마름, 벗풀, 가시연꽃 등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늪에 반쯤 밑동을 담그고 있는 나무들이 '원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국내 많은 늪은 사라지고 이제 늪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국내 한 곳. 바로 우포늪뿐이다.

뭍도 아닌 물도 아닌 늪,
국내 최대규모로서 온갖 풀, 나무, 곤충, 물고기, 새 그리고 인간을 품에 안은 자애로운 곳. 원시적 저층늪을 그대로 간직한 마지막 자연늪인 우포는 산으로 둘러싸여 개발이란 탐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생태계 박물관' 바로 그것이다.(경향신문 1996/5/30)

이젠 보존해야할 우포...
우포늪은 1997년 7월 26일 생태계보전지역1)중 생태계특별보호구역(환경부고시 1997-66호)으로 지정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1998년 3월 2일 람사협약2) 보존습지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9년 8월 9일 습지보호지역3)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제 우포는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존해야 할 곳이 된 것이다.


1) 생태계보전지역(자연생태계보전지역) : 환경부장관이 자연환경 보전지구에서 자연생태계의 보전이 특별     히 필요한 지역에 대하여 설치한 자연생태계 보호구역(자연환경보전법 15조).
    2) 람사협약 :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3) 습지보호지역 : 자연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등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있는     습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 지역은 1999년 2월에 제정된 습지보전법에 의해 보호된다.



세진주차장현황

    위 치 :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면 적 : 5151㎡
    주차가능대수 : 100대정도
    주차장설치 : '99. 12월

시설물

시설물

위치

비고

공중화장실

유어면 세진리 주차장내

1동 20평

안내소겸 판매센타

유어면 세진리 주차장내

1동 30평

전망대

유어면 세진리 산 3

1동 15평



우포ㆍ목포늪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내륙습지로 창녕군 이방면과 대합면 등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던 소하천이 폭이 좁아지면서 형성된 것으로, 가로 약 2.5Km, 세로 약 1.6Km정도가 되며, 위치는 동경 128°25', 북위 35°33'이고 면적은 170ha이다.

우포늪은 전체 70만평 중 7만평이 담수지역으로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및 대합면에 걸쳐 원시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내륙습지이다. 현재는 이방면 토평리와 윗토평리 사이에 제방을 쌓아 우포와 목포로 나뉘어 있고 사지포와 우포사이에도 제방을 쌍아 나뉘어져 있어 외형상으로는 우포, 목포, 사지포와 같이 3개의 늪으로 나누어져 있는것 처럼 보인다..

우포ㆍ목포늪의 형성과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낙동강 중류인 경상남북도 경계에서부터 창녕과 남지 사이의 낙동강변에는 배후습지1)성 호수가 집단적으로 분포한다. 빙하기에 침식곡이 발달하여 낙동강과 토평천이 만들어졌으며, 후빙기 해수면에 도달한 토평천은 하류의 운반량이 적어 홍수 때에 역수(逆水)현상이 나타났다. 이때 대하천의 낙동강 물이 소하천인 토평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서 퇴적물이 쌓여 자연제방이 생기고 그 안쪽에 물의 일부가 남아서 우포ㆍ목포ㆍ사지포 등 배후습지성 호수가 되었다. 전에는 우포도 홍수 때 낙동강 물이 역류하면서 수심이 깊어지고 평소에는 낙동강으로 자연 배수되어 수심이 낮아졌었다.

현재 우포ㆍ목포의 그 주변지역의 습지는 70년대 초 인공제방을 쌓아 낙동강의 홍수때 하천 유입을 막고 배수ㆍ개답후 농토가 되었다. 하지만 우포ㆍ목포늪은 초여름에서 가을철에는 희귀식물인 가시연꽃과 마름, 생이가래, 자라풀 등의 수초가 늪을 덮어 훌륭한 경관을 연출하고 겨울이 되면 수천 마리의 철새(쇠기러기, 오리류, 고니 등)들이 아침 저녁으로 늪위를 나는 등의 훌륭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1) 배후습지(후배습지) : 범람원(氾濫原)이나 삼각주(三角洲)에 발달한 자연제방의 배후에 생긴 습지.



우포ㆍ목포늪을 포함하고 있는 낙동강의 제1지류인 토평천 유역에 분포하는 지층은 중생대2) 백악기3)의 신라층군에 속하는 신라역암층을 기저로 하여 함안층, 진동층 및 팔용산 응회암층의 퇴적암4)과 이를 관입한 미산 안산암층 및 함각력질(含角礫質) 안산암이 소규모로 분포하며, 이들 암층을 불국사통의 화강암체가 관입한 바 이들은 언급된 순서로 서측에서 동측으로 분포하여 서반부는 퇴적암이, 동반부는 화성암5)이 노성(露星)된다.

신라역암층은 유역의 입구인 성산리 부근에 분포하여 역암6), 사암7), 사질, 셰일8), 실트스톤 및 니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함안층은 그 상류로 초곡리-대벌리에 걸쳐 넓게 분포하며 회색 및 적색 셰일로 구성된다. 진동층은 함측으로 십이리-대암리-창녕까지 넓게 분포되며 암회색 내지 회색 셰일로 구성되며 불국사 화강암과의 접촉부는 화강암의 관입시 접촉변성 작용에 의해 백색 내지 회녹색 처트로 변성되어 노출된다.

이들 퇴적암은 N20W-N40W, NE10-NE20의 주향과 경사를 보여 거의 수평한 분포를 보이나 곳에 따라 요각(warping)된 형상을 보이기도 한다.


2) 중생대 : 지질시대에서 화석이 풍부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의 시기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때 가운데     에 해당하는 시대.
    3) 백악기 : 지질시대의 중생대(中生代)를 셋으로 나눈 것 중 마지막 시대.
    4) 퇴적암 : 지구표면의 암석이 상온 ·상압 하에서 풍화작용으로 분해 ·이동되어 지구 표면에 침적하는 퇴적작     용으로 생긴 암석.
    5) 화성암 : 지구 내부에서 유래하는 고온의 규산염 용융체(마그마)가 고결하여 형성된 암석.
    6) 역암 : 자갈이 주요 구성물이며, 그 사이를 모래·진흙·탄산칼슘 등의 교결물질(膠結物質)이 메우는 퇴적암
    7) 사암 : 쇄설성퇴적암의 일종으로 사립(砂粒)이 모여 굳어진 암석.
    8) 셰일 : 세립의 쇄설성 퇴적암(碎屑性堆積岩)으로 층리면(層理面)에 평행으로 벗겨지기 쉬운 성질을 가진     암석.



우포늪을 흐르는 토평천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감리 열왕산(해발 662.5m)에서 시작하여 북측에는 왕영산과 진봉산이 분수령9)을 이루고, 남측에는 열왕산과 관룡산(해발 739.7m) 및 화왕산(해발 756.6m)이 분수령을 이룬다.
토평천은 동에서 서로 흐르다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에서 우포에 유입되어 동남방향으로 여러번 "S"모양으로 물길을 바꾸어 가며 내려가다 창녕군 유어면 구미리에서 낙동강으로 유입한다. 토평천 유역은 경남의 북단에 위치하여 남북으로는 구마고속도로가 관통하며 동서로는 주요간선도로가 통과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또한 토평천 곳곳의 하천연변에 대나무 숲이 들어서 있으며 하류부는 사행10)이 심하며 하상물질은 이토11)로 구성되어 있다.

토평천 유역면적은 67.1km², 유로연장은 12.0Km이다. 또한 유역의 형상은 남북에 비하여 동서의 유역폭이 넓은 장방형으로서 유역의 평균 폭은 약 5.6Km에 이른다. 토평천은 법적 준용하천인 본류12) 외 3개 지류13)로 구분되며, 각 지류의 유역형상을 보면 비교적 같은 간격으로 토평천 본류에 유입되고 있다.
하상물질의 평균 입경은 3.62mm~20.51mm로 분포되어 있고 토평천 유역의 평균 하상구배14)는 1/250~1/38로서, 상류부는 급류하천이나 우포늪 하류 구간의 하상구배는 1/7600으로 매우 완만하다 토평천 유역내에 1981년 8월 30일 호우와 9월 3일 태풍 애그니스호에 의해 농경지 침수, 제방유실, 도로침수, 수리시설의 피해가 있었으며, 또한 매년 농경지의 침수가 발생되는 실정이다.


9) 분수령 : 분수계(分水界)15)가 되어 있는 산등성이. 분수 산맥.
    10) 사행 : 하천 따위가 뱀이 기어가는 모양으로 구불구불하게 흐름.
    11) 이토 : 진흙
    12) 본류 : 강이나 내(川)의 원줄기.
    13) 지류 : 원줄기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 원줄기에서 갈라져 나간 물줄기.
    14) 하상구배 :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는 하천 바닥[河床] 경사.
    15) 분수계 : 땅에 내린 비가 둘 이상의 수계(水界)로 갈라지는 경계. 분수선.


※ 출처 : 습지학원론(한국의 늪), 2000, 박수영, 경남발전연구원 공저

 


우포와 같이 큰 강에 가까이 있는 습지 (홍수지대 습지: floodplain wetland)는 강의 영향을 크게 받는 습지이다.
강의 주변에는 강의 흐름이 굽이굽이 흐르다 잘려서 생긴 우각호(oxbow lake)나 낮은 지대에 물이 고여 생성되는 습지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습지가 있다. 우포는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이 늪으로 유입된 후, 토평천을 통해 낙동강 본류와 적포 즈음에서 연결되어 있다.


낙동강으로부터의 영향
비가 연속적으로 내리는 집중호우나 홍수기가 되면 낙동강의 수위가 평상시보다 7-8m이상 상승하고 상승한 낙동강 본류의 수위는 토평천을 거슬러 올라가 우포습지의 집수역에서 내려오는 물과 함께 습지의 수위가 4-5m이상 크게 상승한다.
홍수로 증가한 수위는 3-4일에서 길게는 10여일 정도까지 머물며 홍수에 견디지 못하는 육상식물들을 죽게 만든다.
그러나, 원래 홍수에 잘 견디는 식물은 다시 자라게 되고 물위를 떠다니던 개구리밥이나 생이가래와 같은 부유성 식물은 제방의 언저리에까지 올라가 물이 빠지면서 말라죽게 된다. 또 일부는 본류로 떠 내려가 하류로 이동하기도 한다.

홍수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
수위가 상승하고 탁한 물이 지속되면 우포에 서식하고 있던 식물은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일차적으로 물 표면의 부유식물은 늘어난 물을 따라 흩어지게 된다. 홍수로 늘어난 부유물질은 빛의 투과량을 감소시켜 물 속에 잠긴 수생식물들의 광합성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 불어난 물이 안정되는 동안에 물 속의 미세한 부유물질들은 가라앉으면서 잎의 표면을 덮어 이차적으로 광합성을 저해하게 된다. 그러나, 넓은 면적을 침수시키기 때문에 부유하던 식물이 흩어져 홍수가 완전히 물러가고 수위가 낮아지면 표면으로부터 많은 빛이 투과되어 물 속의 식물과 식물플랑크톤이 만들어내는 산소의 양이 증가하기도 한다.
홍수가 지나간 후 보기에는 식물상이 완전히 교란된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생물들이 새로 차지할 공간이 생겨 매우 역동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홍수는 매우 중요한 늪 생태계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우포에는 왜 다양한 수생식물이 서식할까?
부착생물의 생태

우포에는 물의 표면, 물이 땅과 접하는 가장자리, 물 속 등 다양한 수생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수생식물들이 물 속에서 살고 번식하기 위해서는 썩지 않도록 매우 독특한 형태를 갖추어야 한다. 연뿌리처럼 뿌리가 일부 비어 있어 기체교환(생명체와 외부 사이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일어나거나, 잎을 물위로 쉽게 띄우기 위해서 스폰지와 같은 조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동하는 새들에게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철새들의 주요 이동 경로 중 하나인 동아시아-호주 경로상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다양한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우포는 봄과 가을에 남쪽과 북쪽을 이동하는 새들에게 중간에 쉬어가는 휴식처를 제공한다. 이들은 먼 거리를 비행 하고, 또 이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포는 이러한 새들에게 풍부한 먹이와 휴식처를 제공하여 철새들이 이동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 큰기러기, 고니, 청둥오리, 쇠오리, 홍머리오리, 물닭 등
우포의 사계절 가운데 가장 많은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계절은 겨울철이다. 겨울철새들은 북극 지방의 혹독한 기후를 피해 10월쯤 4,300 ~ 6,000Km를 남쪽으로 날아와서 겨울을 지내는데, 우포에서는 이러한 겨울철새들이 월동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 쇠물닭, 물총새, 휘파람새, 왜가리, 중대백로, 쇠백로, 알락할미새 등
여름이면 적합한 날씨와, 풍부한 먹이 그리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기 위해 남쪽에서 날아오는 새들이 우포늪을 찾아온다.

: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 딱새, 멧비둘기, 종다리, 노랑턱멧새, 까치, 까마귀 등
텃새는 한지역에서 사계절 내내 살아가는 새로, 우포의 텃새는 주변의 농경지나 낮은 산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노랑부리저어새, 황조롱이, 황새, 큰고니, 고니, 잿빛개구리매, 매
우포는 이렇게 다양한 새들이 계절을 달리하면서 찾아오기 때문에 새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새들 중에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하거나, 멸종위기에 있는 희귀한 새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우포는 다양한 새들이 찾아오는 중요한 생활 공간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가까이서 새를 관찰하고 자연 학습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우포의 보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1만5천년 전 빙하기가 최대였을 때 해수면(바다의 수면)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다. 이때 남해바다는 낙동강 하구에서 60㎞나 떨어져 있었고 낙동강과 우포늪은 폭이 좁고 깊은 골짜기였다. 골짜기의 깊이는 퇴적암층이 누워있는 지하 10m였거나, 또는 그보다 훨씬 깊었을지 모른다.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1만년 전에는 바닷물이 현재의 해수면보다 25m 아래, 8천년 전에는 10m 아래까지 차 올랐다. 바닷물은 6천년 전에서야 현재의 높이에서 안정된다.
빙하가 녹으면서 육지의 골짜기였던 낙동강 계곡으로도 바닷물이 들어와 낙동강 하구에서 160㎞ 떨어진 경북 고령군 88고속도로 고령교(88고속도로)까지 바닷물이 넘실댔다. 낙동강은 이때 강이 아니라 내륙의 좁은 만(灣)이었다.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까지 홍수가 나면 골짜기 상류에서 낙동강을 따라 흘러내린 돌과 흙이 지리산 계곡에서처럼 계류에 실려 멀리 옮겨졌다. 그러나 바닷물이 들어온 뒤에는 좁은 만의 바닥에 쌓였다. 이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점차 바닥이 해수면보다 높아지고 그 사이를 따라 강이 흐르게 됐다. 이후 강의 양쪽에 모래와 흙이 쌓여 비옥하고 넓은 둑(자연제방)을 만들었다.

현재 우포는 낙동강 본류에서 동쪽으로 7㎞ 가량 떨어져 있다.
화왕산에서 시작해 창녕읍을 지나온 토평천이 이 늪으로 흘러 들어왔다가 낙동강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토평천이 우포늪으로 실어온 흙과 모래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 해발 고도가 9.6m인 반면, 하류인 낙동강 쪽 자연제방은 홍수때 실려온 퇴적물이 작은 동산처럼 높게 쌓여있다(해발 14~17.5m).
홍수가 나면 낙동강물이 우포로 역류하고 평상시에도 배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이 일대는 물이 고여있는 늪이 됐다.


옛 문헌에는 '우포' 라는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지리지(우리 나라의 땅 그림)인 세종때의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소하천이나 소택지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수 없다.
성종조(1477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창녕현편에 물슬천(勿瑟川), 이지포(梨旨浦), 누구택(樓仇澤), 용장택(龍壯澤)의 기록이 나오고 순조조(183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에도 같이 기록되어 있으며, 철종조에 편찬된 대동여지도(김정호, 1861년)에는 물슬천과 이지포는 지도에 나타나 있으나 누구택 대신에 누포(漏浦)라는 지명이 나와 있다.
이들 지리지에 나오는 지명은 동국여지도, 경상도읍지의 창녕현지도 및 현지형도를 근거로 분석해 보면 물슬천은 지금의 토평천이며 용장택은 현재는 개간되고 없는 대합면에 있던 용호를 지칭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 경상도읍지(순조,1832년) 창녕읍 산천 ]

[ 대동여지도(김정호, 1861년) ]

이지(梨旨)라는 지명은 토평천 하류부 성산리에 이지(梨旨) 혹은 배말리라는 지명이 나타나 있으나 현재 이 위치에는 소택지가 없다.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누구택과 대동여지도의 누포는 그 위치가 현 우포와 거의 일치하고 하고 있다.

조선시대가 끝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일제에 의해 지명들이 개정되고 우포, 목포, 사지포로 명기되어진다.(*현지주민들은 지금도 소벌, 나무벌, 모래벌로 지칭한다)
1918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50000:1 실사지도가 만들어지고 지금과 같은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다행히도 우포늪 주변의 원형을 볼 수 있다. 또 같은 해에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지지(地誌) 자료에는 '창녕에는 천지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큰 우포가 있다.' 는 기록이 있다.(한국문화연구 · 부산대)
그리고 일제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1933년 '보호사적에 관한 법률' 을 만들고 우포를 천연기념물15호로 지정하여 보호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포늪은 큰 변화를 맞게된다. 지금의 우포늪 동쪽에 있는 대대제방을 축조하여 대대들을 개간하여 우포늪은 3분1가량 줄어들게 되고 제방을 만들어 홍수피해가 전보다 줄어들자 마을 뒷산 기슭에 동네를 이루고 살던 대대리 주민들도 그 아래 평평한 곳으로 대부분 내려와 살게된다.

광복이후, 1962년 12월 백조(고니)도래지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오다가 1973년에 백조(고니)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되면서 우포늪은 또 한번의 큰 변화를 겪는다. 도시의 산업화와 농경지 확장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낙동강과 토평천에 제방이 만들어지고 주변의 우포늪과 같은 사몰포, 용호 등과 크고 작은 대부분의 늪지들이 농경지로 변하였다.

그리고 1978년 농어촌진흥공사에서 우포늪을 농경지로 개간하려고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중도에 포기하여 현재도 목포늪 아래부분에서 시작한 나지막한 제방이 우포늪 북쪽을 가로질러 동쪽 끝 토평천 입구까지 나있다. 이후 우포늪은 주변의 축산폐수와 낚시꾼으로 인하여 오염되고 철새들도 인근의 주남저수지나 낙동강 하구로 옮겨갔다.
1970년대를 거치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자들이 우포늪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조사 및 연구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늪지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하게되면서 환경단체들의 우포늪 보전노력과 우포늪에 대한 많은 언론 보도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지역주민들과 환경운동 단체와 정부의 갈등이 있게된다. 이용과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지역주민들은 어로와 대칭이, 고동 등을 채취하여 생활해 온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을 우려했고 환경단체는 보호구역 등을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 번의 공청회와 대화를 통하였고, 환경부는 1997년 7월 26일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고, 이듬해인 1998년 3월 2일에는 국제협약인 람사협약에 등록하고, 1999년 2월 8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습지보호지역 내에서 농사를 짓던 사유지 20 만평을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매입하고 환경감시원을 두어 차량의 진출입을 통제하고 불법어로와 환경감시를 하고있다. 현재 우포늪이 속해있는 창녕군은 물론, 지역주민과 민간환경단체들도 우포늪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소벌, 나무벌, 모래벌, 쪽지벌은 현지 주민들 사이에 불려지는 이름으로 우포, 목포, 사지포는 이를 한자로 바꾼 것을 알 수 있으나 문헌에 나오는 이지포, 누포 등과는 연관성을 알아내지 못했다. 좀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될 것으로 보여진다.

인용자료
土坪川 沿岸 沖積平野의 地形發達 (申潤鎬, 1983년, 경북대 석사학위논문)
우포늪 넓게 보기 (송동운기자, 국제신문기사, 2001.5.14일부터 4회)
창녕군지 (창녕군, 198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