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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암흑시대처럼 세상의 모든 일을 신의 뜻으로만
해석하던 시대가 있었고, 동양에서는 만상을 음양오행으로만 해석하는 조류가 있어 신맛 단맛 등 미감은 물론 색깔과 온도 전기 자기마저도
오행으로 해석하던 시대가 있었다. 20세기 이후 현대인은 모든 것을 과학이라는 절대 신앙에
맹목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인시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을 포함한 우주의 그 어느 것도 빛
속도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잘못되어 있고 실질적으로도 오류인 것이 명명백백히 밝혀져 있는
사실이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 속도보다 빠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빛 속도보다 빠를 수 없다고 가정합시다." 라는 전제 위에 상대성이론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전제가 결론이
되어 버리고 잘못된 가정하에 수립된 이론이 전제가 되어 버리는 세계적 역사적 오류가 아직까지도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중세의
신학처럼. 실제로 빛보다 빠른 것이 없다는 가정이 오류라는 사실을 밝힌
실험결과는무척이나 많다. 1964년
유럽 핵 연구 센터에 있었던 벨은 “벨의 정리”라는 부등식을 발표했는데 이는 양자역학을 부정하는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양자 역학을 주장하는 보어의
주장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를 판가름하는 수식이다. 다시 말하면,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입자를 동시에 측정할 때 얻어지는 결과 사이의
상관관계를 조사함으로써 입자의 국소적 실재(local reality)를 주장하는 아인슈타인의 주장과 비국소성(non-locality)을 주장하는
보어의 주장 중 누구의 주장을 충족시키는가를 확인하는 부등식이다.
1982년 남파리대학교의 광학 연구소의 아스펙트와 그 동료들은 2개의 광자의
편광각을 동시에 측정하는 실험에 성공하였다. 즉 쌍둥이 광자를 만든 다음에 이 둘을 떼어놓고 한 쪽의 스핀을 바꾸니 다른 한 쪽 광자의 스핀이
동시에 바뀌는 것을 관찰한 것이다. 이 실험은 1997년 제네비대학의
쥐신에 의해 반복되면서 재차 확인되었다. 이 실험이 뜻하는 바는, 광자와 같은 물리적 존재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아도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비국소성(非局所性) 존재라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세간에서는 흔히 정보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달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수
있는데, 이 실험의 참 뜻은 정보가 전달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광자들은 본디 그냥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구 소련의 신화적인 과학자 고지레프(Kozirev)는 수
광년 떨어진 천체로부터 빛보다 10의 9승 배 이상 빠른 신호가 전달 되는 현상이 있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하였고,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과학 아카데미를 포함한 15개 연구소에서 이러한 실험 결과를 누차 재 확인한 바 있다. 유럽의 CERN, 미국의 NASA에서 빛보다 10여배 빠른 속도로
음악을 실어 보낸 실험을 소개한 적도 있다. 반도체 실험실에서도 간단한 장치를 통해 양자터널링 효과를 일으킬 때 빛 속도보다 몇 배 빠른 신호가
전달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유쾌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의 양자전자동역학(Quantum Electro Dynamics)에 의하면 빛은 한 개의 경로로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소리가 퍼지듯 모든 방향으로 진행하고 모든 방향으로 반사하는데, 다만 다른 경로로 퍼지고 모이는 빛의 상호 위상이 겹쳐서 상쇄되지 않는 곳에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빛은 도깨비같이 도처에 출몰할 수 있는데 다만 서로 동하거나 어울리는 곳에만 모습을 나타낸다는 말이다.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긴가
하겠지만 물의표면에 옅게 깔린 기름막이 얼룩덜룩한 무지개 무늬를 보이는 현상이나, 신용카드 모서리에 위조 방지를 위해 새긴 무지개 빛
홀로그램 무늬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여 보여주는 실 예라 할 수
있다. 하나의 빛의 원천에서 나온 동일한 빛이 보는 각도나 거리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변하는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빛은 빛 속도를 가지는 특정한 실체가 아니라 상호 관계에 의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도깨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입자라고 할 수 있는 전자도 빛과 똑같은 현상을 보이는 데서 입자나
존재에 대한 현대인들의 절대적인 시각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 전자가 빛과 같은 파동을 넘어 상호 관계에 의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세상을 구성하고 모든 사물들에 특징을 부여하는 원자나 분자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전자의
역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믿음은 송두리째 뒤흔드는 충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존했던 중세에서 르네상스가 꽃피기 시작하고, 음양오행에 모든 것을 맡겼던 근대 동양에 신 문명이 들어오듯이 과학맹신 세상에도 탈 과학의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존재론적 과학 패러다임은 상대성이론에서 끝났고 양자역학의 태동기부터 바깥에 있는 세상은 존재와 물질로 구성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상호관계와 의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는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의 근본인 파동방정식 자체가 의식과 관계에 의해 대상 상호간에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의 종류나 조건을 알아 내는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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